날씨가 굉장히 추웠던 어제(30일) 오후 2시에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있었던, 대학생긴급행동에 참석했습니다. 저희 학교 총학생회장을 포함한 대학생들과 한대련은 이종걸 국회교육과학위원장(민주당)실에서 28일부터 농성을 하고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는 등록금 상한제 없이는 반쪽 짜리다.

  정부여당이 고집하고 있는 '취업 후 상환제'는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한나라당은 기존의 취업후 상환제에서 등록금 상한제에 대한 제한적 적용과 저소득층 무상장학금 유지의 수정된 입장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학생들과 학부모, 시민들의 눈치를 보고 조금의 형식적인 수정을 한 것 뿐이지, 등록금 문제의 해결에 미흡하기 짝이없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 이자율 6% 안팎, 복리적용
▷ 기존 저소득층 장학금 및 소득7분위까지의 이자 지원 제도 전격폐지, 관련 예산 삭감
▷ 수능 6등급 미만 저소득층 대학생 무상장학금(기초생활수급권자 대학생 450만원, 차상위계층 대학생 220만원 폐지)대신 지급하기로 한 생활비(기초생활수급권자 대학생에게만 200만원)지원폐지

  등을 골자로 하고있습니다. 대충만봐도 이게 어디 친서민정책입니까, 반(反)서민 정책일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생들과 학부모, 교육-시민단체, 야당의원들은 새로운 요구안을 내놓았습니다.

▶ 취업 후 상환제는,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가 아닌 등록금 상한제와 함께 도입되어야 한다.
▶ 기존의 저소득층 장학금과 소득7분위까지의 이자지원을 유지하고, 나아가 확대되어야 한다.
▶ 취업후 상환제 적용 이자율을 최소로하고, '단리'를 적용해야 한다.
▶ 수능 6등급 미만에겐 장학금 자격을 박탈하는것을 폐지한다.

  이런 우리들의 요구안이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이미 너무 많이 폭등하여 서민 가정에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등록금을 인하하는 것입니다. 이미 부풀대로 부푼 등록금을 줄이는 방법은 등록금상한제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등록금상한제에 대한 말은 온데간데 없고 한나라당에서는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를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또 여당은 "국공립대만 상한제 도입"하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는 국공립대가 15%, 사립대가 75%비율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사립대가 상한제 도입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외면한 처사입니다.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던 이명박정부는 국민들의 환심을 얻기 위한 보여주기식 정책만을 내 놓을뿐, 더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성적 조금 모자란다고 장학금자격까지 박탈하겠다니, 이게 국민을위한 정부입니까.

   무늬만 등록금 후불제, 짝퉁 등록금 후불제로 오히려 서민에겐 불리한 내용이 대거 포함되어 있고, 원금의 무려 3배까지 평생 갚아야 하는 미래의 빚더미 폭탄을 대학생들에게 안겨주고는 '친서민'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너무나 기만적이어서 비난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올해 12월 28,29,30,31은 등록금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왜 이렇게 학생, 학부모, 교육-시민단체, 그리고 야당이 반발하고 아우성을 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2010년 예산을 처리하는 국회 본회의가 31일 하루 남았습니다. 반값등록금을 이야기 했던 정부였습니다. 당선 후에 반값등록금 공약을 부인하고 허울뿐인 취업후 상환제를 내놓았습니다. 제발 정부와 여당은 우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등록금문제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학생-학부모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제대로 된 취업후 상환제로 거듭나 도입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4대강 삽질할 돈으로 교육예산 확충하고,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해라~~
  당장 요구안 받아들이고 제대로된 상한제 도입해서 등록금 인하를 결단하라~~!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기사 참고.
@이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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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케이

안녕하세요^ㅇ^) 아리엄마 이케이입니다.ㅋㅋ

아리의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엄청 잘먹고 쑥쑥 자라고있어요~.~)
바로 어제 2차 종합백신 예방접종과, 심장사상충약을 맞고, 몸무게를 쟀는데
의사선생님께서 1차 예방접종 맞을때는 1키로 좀 넘었었는데 1.9kg정도가 되었다고 하셨어요.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고 있다고.ㅎㅎㅎ

어디 가서 사진찍을일이 있어서, 선배의 좋은 카메라를 빌렸었는데 그김에 아리사진 몇장 찍었습니다. 역시 좋은카메라로 찍으니까 사진이 좋군요....^^;


아리 표정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기전에 찍은거라~ 자취방에 이불깔아놓고^^;;;




자, 오늘의 베스트 컷 나갑니다~~~~~
기대하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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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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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쁘게 나왔죠~~~ 아리는 입모양이 너무 귀여워서
이렇게 아래에서 위로 찍으면 너무 이쁘고 귀엽게 나오더라구요.ㅎㅎ
그렇지만 정말 이렇게 찍기 쉽지 않다는=_=);;; 우연히 ㅋㅋㅋ 이렇게 이쁘게 찍혔습니다.
바로 제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설정~! ㅎㅎㅎ

바탕화면 한가득 아리의 귀여운얼굴이 ㅎㅎㅎ ^ㅇ^*

그럼 제 블로그에 놀러오신 모든분들 연말 정리 잘하시구,
2010년 HAPPY NEW YEAR♡

* 아, 참! 추천 하나 꾹 눌러주고 가셔용~~^^ *


@이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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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케이
[사람 사람들] 투쟁하는 농사꾼 김영돈을 만나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먼길을 떠나야 한다. 그와 함께 술잔이라도 기울이려면 며칠 출근하지 않으리라는 작심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또한 그를 만나려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뜨거운 열정쯤은 가지고 있어야 대화가 된다.
‘그’의 직업은 농사꾼이다. 농사를 지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노모, 아내와 함께 소박하게 살아간다. 적어도 농사를 짓는 그의 모습은 여느 농사꾼과 다를 바 없다. 그의 이름은 김영돈이다. 이름만으로도 농사만 짓는 팔자는 아닌 듯싶다.
지난 해 가을 그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정선군 동면 건천리로 갔다. 늦가을이었고 단풍이 툭툭 떨어지던 주말이었다. 정선읍내를 지나 건천리로 가는 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굽은 길은 여정을 더디게 했지만 덕분에 속도를 줄일 수 있어 좋았다. 속도를 조금만 줄여도 풍경은 스크린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길 덕분에 김영돈을 찾아가는 길이 여행길이 되고 말았다. 건천리로 가기 전의 마을은 동면 소재지다. 그 마을의 지명은 화암(畵岩), 즉 그림바위이다. 바위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다.
화암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면소재지는 작은 마을이다. 중심가를 걸어서 2분이면 통과할 정도로 짧고 아늑하다. 지붕 낮은 집들은 오래전 보았던 시골 풍경처럼 정겹다. 길을 따라 걷다가 오래된 간판 하나를 발견한다. 요즘엔 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간판이다.
주변은 눈을 조금만 높이 들면 화암이란 지명이 왜 생겼는지 곧 바로 확인이 된다. 화암팔경이 마을에까지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관광지도에 나와 있는 화암팔경을 찾아보는 일도 즐겁다. 하지만 일정이 바쁘기에 다 찾아보는 일은 다음으로 미룬다.
차를 몰아 김영돈의 집으로 간다. 가는 길은 화암보다 더 아름답다. 오픈카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곳이다. 길 양편으로 늘어서 있는 절벽은 그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자동차 유리만으로 부족하다. 결국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경치에 빠져든다.
골짜기로 흐르는 물은 마신다 해서 탈날 일 없을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관광 안내도에는 1급수에만 산다는 ‘뚜구리’라는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뚜구리’는 머리가 큰 민물고기이다. 바닷고기로는 아구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에는 흔했지만 요즘엔 귀한 취급을 받는 민물고기다.
김영돈의 집으로 가는 길에 소금강이 있다. 작은 금강산이라는 ‘소금강’ 끝에 몰운대가 있다. 몰운대는 황동규 시인의 시 「몰운대 行」의 무대이다.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시인은 몰운대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을 만큼 고요한 절벽이 소금강에 있는 몰운대다. 고사한 지 10년이 넘은 소나무는 아직 그 위용을 자랑하고, 몰운대의 수십 길 절벽은 큰 숨 한번 쉬지 못할 정도로 아득하다.
몰운대를 지나 조금 더 가니 건천리로 가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을 한다. 잠시 오르막길인가 싶더니 시작부터 경사가 세다. 급회전을 하면서 오르는 길은 영락없는 강원도 길이다. 보통 운전자라면 겁부터 낼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쉼 없이 올라야 하는 길은 자동차의 속도를 갈수록 떨어트렸다. 곳곳엔 겨울을 대비한 모래가 시골 아이들의 똥무덤처럼 놓여 있었다. 눈이 조금이라도 내리면 발이 묶일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모래마저 없으면 급한 볼일은 꿈도 꾸지 못할 동네였다.
해발 고도가 높아지자 귀가 먹먹해졌다. 마주 오는 차량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초행 길에다 급경사와 급커브로 이어진 길은 방문객을 겁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 순간 먹먹하던 귀가 뚫리며 차는 고갯마루에 섰다.
올라온 게 신기해 차를 세우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꼬불꼬불한 길은 시야에서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고개에 오르니 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노란 낙엽송 밭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흐드러졌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담배 한 대를 길게 빨며 잠시 주변의 풍경에 빠졌다. 김영돈과의 약속 시간은 조금 남았다. 담배 한 대의 여유는 충분했다. 느껴지는 바람이 차면서도 상큼했다. 도시에서 맛보는 바람과는 차원부터 달랐다. 시원한 바람이 폐부 깊숙하게 밀려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담배 맛도 도시에서 피우는 것보다 좋았다.
출발하기 전 김영돈에게 전화를 했다. 고갯마루에 있다니 좀 더 오라고 한다. 차를 몰고 김영돈이 오라는 길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고개를 내려서니 넓은 마을이 나온다. 길 아래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을이 분지처럼 위협적이지 않은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산은 사방에서 불어주는 바람을 막아주는 듯 빙 둘러쳐져 있고, 그로 인해 마을은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건천리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마을이다. 물이 귀하다 하여 건천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마을을 관통하고 있는 개울은 지명과 달리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두 갈래 길이 나와 다시 김영돈에게 전화를 했다. 좌측으로 오면 자신이 있다고 한다.
송이골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고개를 넘으면 임계면이다. 좌회전하여 조금 가니 김영돈이 길가에 나와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길이 험하죠?”
“덕분에 좋은 구경했습니다.”
김영돈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농사일로 그을린 얼굴이 무척이나 건강해 보였다. 올해 마흔넷인 나이처럼, 꼭 그만큼 보이는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정선사투리가 김영돈에게서 나왔다. 태어나서 줄곧 건천리에서만 살았냐고 물었더니 젊을 땐 잠시 도시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말투는 변하지 않는단다.
20대 초반엔 사북 탄광에서 광부로도 2년 정도 일했다고 한다. 인생 막장을 너무 일찍 맛본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는 언제부터 지었냐고 물으니 스물일곱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력이 결코 짧지 않다.
김영돈은 일을 하던 중이었는지 옷 여기저기에 흙이 묻어 있었다. 주말이 따로 있을 리 없는 게 농사꾼의 삶이니 당연한 차림일 것이었다.
“뭐하는 중이었나요?”
“황기 씨를 받기 위해 싹을 베어왔어요.”
그는 트럭 가득 실려 있는 황기 싹을 비닐하우스로 옮기는 중이었다. 황기는 한약재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남성들에게 좋다고 한다. 정선 지방이 황기의 주산지라는 말도 덧붙인다.
“씨도 돈이 돼나 봐요?”
“제법 됩니다. 시골에서 돈 안 되는 게 사실 없지요. 큰돈이 아니라서 그렇지만 하나 둘 모으면 일용할 양식은 구할 수 있습니다.”
“괜찮다면 황기 씨 좀 구할 수 있어요? 밭에 좀 뿌려보고 싶은데.”
“드리죠 뭐. 근데 농사는 지을 줄 알아요?”
“농사가 별건가요. 그냥 뿌려놓고 지들 알아서 크길 바라는 거지.”
“허허, 태평농법이 가장 속 편하죠. 사실 농사라는 게 손이 많이 가서 힘든 거지, 그렇게만 하면 힘들지도 않지요.”
“일하지 않은 만큼 대신 소출이 줄어들잖아요.”
“그러니 직업적으로 하는 농사꾼들은 태평농법을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당장 돈이 안 되거든요.”
비닐하우스 안에는 그를 도와주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건천리 마을에 사는 총각들이었다. 30대 중후반인 그들은 일손 부족한 시골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만삼 캐러 가실래요?”
김영돈이 맞은편에 있는 밭을 가리켰다. 밭에서 사람들이 만삼을 캐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잖아도 오늘 만삼을 캔다는 소식을 들었던지라 함께하기로 했다.
“이곳은 아래 지역보다 춥네요.”
“건천리가 해발 700이 넘어요. 오늘 아침엔 얼음까지 얼었는걸요.”
“해발 700이면 인간이 살기 가장 좋다는 고도 아니던가요?”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이 다들 건강하잖아요.”
김영돈이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웃는 모습이 시원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탕하게 ‘껄껄’ 웃는 사람을 좀처럼 보기 힘든 세상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만삼밭은 비탈진 곳에 있었다. 아주머니 세 분과 총각 하나가 만삼을 캐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소주를 챙겨 밭으로 갔다. 만삼 안주로 소주 한잔 나누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에 준비한 거였다.
“어, 이런 거 선수 치면 안 되는데.”
김영돈이 소주를 보며 말했다. 그의 느릿느릿한 말투는 빠른 세상살이를 사는 사람으로서는 따라하기 힘든 말투였다.
“빈손으로 오기 미안해서 준비한 거니 한잔 합시다.”
그렇게 말하고는 소주를 땄다. 그런데 만삼은 날것으로 먹기엔 부담스럽다 한다. 만삼이 한약재로 쓰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날것은 맛이 없다는 거다. 하는 수 없이 아주머니들이 먹다 남긴 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셔야 했다.
“만삼이란 게 생긴 게 더덕하고 비슷해요.”
“향은 더덕보다 더 좋고요. 크기는 더덕보다 작아요. 더덕과 만삼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잔털이 많고 적고를 보면 돼요. 봐요, 만삼은 이렇게 잔털이 많잖아요.”
“이 만삼은 몇 년 만에 캐는 거죠?”
“3년 근짜리입니다. 그 정도는 키워야 값이 나가거든요.”
만삼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좋다고 한다. 황기가 남성용 한약재라면 만삼은 여성용 한약재인 셈이었다.
“저녁에 만삼으로 만든 백숙 들고 가시죠.”
김영돈이 만삼을 넣어 만든 백숙을 준비하겠다며 먹고 가라 한다. 그 맛이 궁금해서 그러마, 한다. 황기백숙이나 엄나무백숙은 먹어봤지만 만삼백숙은 처음이라 은근히 기대도 되었다.
“그럼 백숙값은 해야 하니 만삼 캡시다.”
술잔을 털며 준비한 장갑을 끼었다. 이곳에 오면서 가장 먼저 챙긴 게 장갑이니 일손을 도와주려는 방문객의 예의는 갖춘 셈이다. 오래전 아버지를 따라 황기라는 약재를 캐본 경험이 있었기에 농사일이 손에 낯설지는 않았다.
만삼을 캐는 기구는 ‘호구’라는 농기구인데, 삼지창처럼 생겼다. 예전 외양간의 소 배설물을 칠 때 사용하던 쇠스랑이라 생각하면 맞다. 단지 호구는 쇠의 길이가 쇠스랑보다 길고 휘어지지 않은 게 특징이다.
호구질이라는 게 생각처럼 만만한 게 아니다. 비스듬하게 땅에 꽂으면 만삼이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직각으로 꽂아야만 되었다. 깊게 찔러 넣은 호구를 뒤로 당기면 흙이 떠올랐다. 그 사이에 만삼이 술술 달려나왔다.
“만삼은 우리한텐 보물이래요.”
김영돈이 만삼을 거두며 말했다. 그럴 것이 가격도 다른 농산물보다 비싼 데다 알찬 놈들이 쑥쑥 나오니 보물이 따로 없었다. 호구질을 30여 분 하니 땀이 송송 배어나왔다. 그렇게 몇 골을 캐고 나니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일하던 아주머니들도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물었다.
“동해에서 왔어요.”
“동해면 꽤나 먼 거리인데 여기까지 일하러 오세요?”
“멀긴 하지만 일거리가 있으면 어디든지 가요.”
건천리에서 동해까진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새벽에 출발해 일터로 오면 시간이 딱 맞는단다.
“차는요?”
“좀 있으면 봉고차가 우릴 데리러 올 거래요.”
정선 일대로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가 많단다. 여기저기 흩어져 일하다가 저녁이 되면 함께 돌아간단다. 아주머니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은 인력회사가 전담한다고 한다. 시골의 일손 부족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도시 여성들까지 불러야 하는 게 요즘의 농촌 현실이란다.
“한 10년 정도 있으면 시골은 텅텅 빌 거래요. 노인들 다 돌아가시면 누가 농사를 짓고 농촌을 지키겠어요.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지자체나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요.”
맞는 말이다. 시골의 공동화 현상은 앞으로 10년을 기준으로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다. 방문객의 마을만 해도 노인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빈집투성이가 되니 건천리나 다른 시골 마을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해거름이 되자 만삼 한 자루씩 둘러매고 김영돈의 집으로 갔다. 김영돈의 집은 폐교된 학교의 관사다. 폐교된 교실은 마을의 창고로 쓰고 관사는 김영돈의 가족이 머문다.
서산마루에서 꼴딱꼴딱하던 해는 김영돈의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떨어졌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마당가에 모닥불을 피웠다. 만삼을 캐던 총각이 집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던 닭 한 마리를 잡았다. 물을 데운 총각은 직접 털을 뽑기 시작했다. 빠른 손놀림으로 봐서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닭이 익을 동안 옥수수 구워서 소주나 한잔 하지요.”
김영돈이 소주와 생옥수수를 챙겨왔다. 아직도 옥수수가 있었냐고 하니 저온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저온저장고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했다. 김영돈을 따라가 보니 작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문을 열었더니 찬 공기가 가득 밀려나왔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켜주니 농작물을 보관하기엔 그만이래요.”
저장고 안에는 낮 동안 밭에서 캔 만산을 비롯해 여름에 수확한 옥수수와 감자, 김장김치까지 들어 있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네요. 시골에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요긴하게 쓰겠는걸요.”
“좋지요. 처음 시설할 때 비용이 드는 게 흠이지만 하나쯤 있으면 편해요.”
“그렇겠군요.”
예전보다 시골살이가 좋아지긴 했다. 오래 전엔 겨울을 준비하려면 땅을 파고 감자나 무를 묻어두곤 겨우내 파먹었다. 좋아진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오래 전 시골살이가 힘들다며 도시로 떠났다. 떠난 이들은 다시 시골을 찾지 않았다. 시골살이가 지긋지긋하다는 게 이유였다.
모닥불에 넣은 옥수수가 검게 타들어갔다. 김영돈이 옥수수는 그렇게 굽는 게 아니라며 손수 몇 개를 굽는다. 어릴 적 옥수수 서리할 때 구워 먹어본 이후로 처음 보는 모습이다. 숯불에 구워진 옥수수는 삶는 것과는 맛부터가 달랐다. 김영돈이 구운 옥수수는 고소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탄 거는 이렇게 해서 먹으면 돼요.”
김영돈이 방문객이 태운 옥수수 알을 손으로 비비더니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김영돈의 모습을 보니 어릴 적 기억이 났다. 그 시절에도 두 손으로 검댕을 제거한 후에 먹었다. 김영돈은 아직 그 시절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골스러운 맛이란 게 그래서 정감 있고 친근하다.
옥수수만으로 안주가 부족했던지 김영돈의 부인인 함선랑 씨가 김밥을 내온다. 아이들의 공부방에서 만든 것이란다. 어른들은 김밥을 안주 삼아 먹으며 소풍 나온 듯 모닥불로 모여들었다. 함선랑 씨는 초등학교 5학년인 ‘동아’와 4학년인 ‘민아’의 어머니며,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이기도 하다.
농부의 아내이며 며느리인 함선랑 씨는 이 지역의 풍물패를 이끌고 있는 재주꾼이기도 하다. 또한 정선군 여성농민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 활동가이다. 이쯤해서 남편인 김영돈의 사회적 활동도 소개해야겠다.
김영돈은 정선군농민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정선군 민중연대 상임의장으로 활동하는 진보적 농민이다. 또한 정선군 한미FTA 저지를 위한 공동대표도 맡고 있는 등 그의 활동 폭은 전방위적이다.
요즘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 저지를 위한 투쟁의 일선에 서 있는 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부부는 농사를 지을 때도, 투쟁을 할 때에도 늘 함께한다. 세상에 이런 부부가 얼마나 될까 싶다. 어떤 집은 농민회 활동하는 남편이 싫다며 이혼 소리가 나오는 판인데, 이 부부는 출근하듯 나란히 투쟁 전선으로 나선다. 부부가 함께 활동을 하면서 언제 농사를 짓느냐고 물었다.
“시간을 쪼개 합니다. 농사일이라는 게 어떨 땐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 그럴 때는 애가 타지요. 그래도 어쩝니까. 세상이 만만하게 돌아가지 않으니 투쟁을 미룰 수도 없잖아요. 농사도 투쟁이고 사는 것도 투쟁인 삶입니다.”
김영돈의 말이다. 세상은 투쟁 없이 이루어지는 게 하나도 없다. 목숨 걸고 앞서 투쟁한 이들이 있었기에 이만큼의 삶이 보장되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미래와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또 투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숙이 익어갈 무렵 트럭들이 김영돈의 집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차에서 내리는 이들은 다들 젊었다. 그래서인지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들이 힘차다. 젊은이들은 이 지역에 사는 이들이고, 농민회 회원들이다.
가장 먼저 온 사람은 정선군농민회 사무국장인 이대호다. 30대 후반인 그는 트럭에 감자와 옥수수를 싣고 왔다. 그 다음에 도착한 이는 김홍로인데, 들기름과 감자 등을 트럭 가득 싣고 왔다. 전임 농민회장이라는 사람은 토마토를 싣고 왔다. 다들 집에서 기른 작물이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내일부터 인천에 있는 인하대학교에서 정선군농민회 직거래장터를 열기로 했거든요. 거기에서 팔 농산물들입니다.”
농민회 회원들은 자신들이 가꾼 것들을 도시에 나가 직접 판매도 한단다. 질 좋은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팔면 소비자나 농민이나 좋다는 게 직거래다. 인하대학교와의 인연은 학생들이 정선으로 농활을 오면서부터이다. 몇 해째 정선군농민회와 끈끈한 연대를 맺는 학생들이 있기에 직거래장터도 가능하단다.
모닥불도 사그라드는 시간, 닭백숙이 됐다며 집으로 들어오란다. 방으로 들어가니 둥근 소반 위에 정갈한 음식상이 차려져 있다. 만삼을 넣고 푹 삶은 닭은 오골계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 마당에서 날아다니는 닭이란 별명을 가진 놈이라 육질이 쫄깃했다. 닭을 안주 삼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술잔을 비워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송이골 너머에 사는 김홍로 씨 부부만 남았다. 김홍로 씨 부인은 서울에서 시집 온 서울 색시다. 결혼하기 전 김홍로 씨가 영화처럼 살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산촌으로 시집을 왔단다.
“지금 후회하세요?”
“후회는요, 영화처럼은 아니라도 좋은 공기 마시면서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요. 이젠 서울로 가라 해도 안 가요.”
그렇게 말하는 부인의 표정이 해맑다. 30대 초반의 나이란다. 그 나이에 시골살이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이다.
“우리가 사는 게 다 영화의 한 장면이여. 누군가 카메라에 담는다면 감동적인 장면이 많을걸.”
김홍로 씨가 나선다. 부인에게 영화처럼 살게 해주겠다는 말에 대한 책임이다. 방문객이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그들 부부는 영화의 남녀 주인공처럼 알콩달콩 잘사는 것처럼 보인다.
밤이 퍽 깊어 김영돈의 집을 나섰다. 김영돈이 먼저 밖으로 나가더니 뭔가 주섬주섬 챙겼다. 낮에 캔 만삼과 토마토, 직접 만든 만삼 엑기스 한 박스를 차에 싣는다.
“뭘 이렇게 많이 챙기는 거요. 이러면 자주 옵니다.”
“매일 오셔도 환영합니다. 엑기스와 만삼은 어머니 드리면 좋아하실 겁니다.”
김영돈이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심해 가라는 인사를 나누고 건천리를 떠나왔다. 꼬불꼬불한 길을 되짚어 집에 도착하니 시간이 꽤 지났다. 만삼을 본 어머니가 약 달여 먹으면 좋겠다며 좋아한다.
그 후 김영돈과는 몇 번 더 만났다. 한미FTA 저지를 위한 제주도 원정 투쟁도 김영돈과 함께 갔다. 강원도 농민회 회원과 함께한 제주도 투쟁은 2박 3일 동안 진행되었다. 배달되어온 도시락을 거리에서 먹으며 농민들의 아픔을 함께했다. 정선에서 간 농민회 회원들은 경찰과의 대치에서도 선봉대로 나설 만큼 투쟁심이 강했다.
몇몇 회원은 경찰의 봉쇄를 뚫고 협상장으로의 진입을 시도했으며, 바다를 헤엄쳐 협상장으로 가기도 했다. 김영돈도 늘 선봉에 서서 회원들과 함께했다. 편하게 농사만 짓고 살 수 있는데도 그들은 먼 제주도까지 날아와 세상과 맞서 싸웠다.
그 후 춘천에서도 김영돈을 만났다. 지난 연말 춘천에서 진행된 한미FTA 저지를 위한 강원도민 총궐기대회에는 부부가 다 참석했다. 아이들은 어쩌냐고 물었더니 이젠 집회에 참석하는 걸 이해해준다고 한다. 의젓한 아이들이다.
밤늦도록 진행된 집회에서도 정선군농민회 회원들은 봉쇄된 도청의 문을 넘나들었다. 그날 정선에서 간 사람들은 살수차에서 뿌려진 물을 뒤집어쓰고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정선읍내에서는 한미FTA 저지를 위한 촛불 집회가 매일 진행되었는데, 그때에도 김영돈 부부는 자리를 지켰다. 촛불집회 때는 아들까지 데리고 와 촛불을 들었다. 온 가족이 투쟁의 전선에 나선 것이다.
촛불집회가 진행되던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함선랑 씨에게 물었다. 1시간을 달려와 매일 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남편이 하는 일을 지켜만 보면 대화에 벽이 생기거든요. 힘들더라도 함께하는 게 부부 아닌가요?”
그들 부부는 참으로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도시에서 만난 활동가들도 부부가 함께 투쟁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농사는 얼마나 지었나요?”
“아이들 키울 정도는 했지요.”
“김 회장은 대농이래요. 대농.”
옆에 있는 사람이 나섰다. 대농이라면 농사를 많이 짓는다는 말이다. 농사 규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다.
“황기를 5천 평 정도 했고요. 더덕은 2천5백 평 정도, 만삼을 5백 평, 옥수수를 1만 평, 배추를 1만5천 평, 콩 농사를 5천 평 정도 지었어요.”
거진 4만 평의 농사를 지었다는 말에 입이 쩍 벌어졌다. 바깥에서 볼 때는 매일 집회나 시위에만 참석하는 날라리 농사꾼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4만 평이란 규모도 그 넓이가 얼마나 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많은 농사를 언제 지었어요?”
“낮에는 놀고 밤에 몰래 해요.”
그의 말이 재미있다.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김영돈이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었다.
“땅이 그렇게 많은가요?”
“소유한 땅은 5천 평밖에 없어요. 아버지도 가난한 농부였기에 물려받은 땅이 없었거든요.”
나머지 땅은 빌려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한 해 도지세만도 2천만 원이나 된다니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올해 얼마나 벌었어요?”
“농사꾼이 벌면 얼마나 벌겠어요. 그저 빚지지 않고 먹고살 만큼 버는 거지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지난 해 총 매출이 1억을 넘는단다. 지난 해 가을 배추값이 좋아 거기에서 많은 흑자를 남겼다고 한다. 매출이 1억을 넘기는 하지만 순수익은 40% 정도로 보면 된단다. 임대료와 농약값, 비료값 등을 제하고 남는 금액이다. 순수익을 4천만 원만 잡아도 도시 근로자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수익이 그 정도면 농사지을 만하네요?”
“해마다 조금씩 달라요. 흉년이 드는 해는 본전도 못 건지는 걸요.”
그렇긴 하겠다 싶지만 김영돈은 농사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시골살이가 빚으로만 점철된다는 농사꾼의 얘기와 김영돈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빚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던데 그 이유는 뭔가요?”
빚 때문에 자살한다는 농민이 많은 터라 궁금해서 물었다.
“농사짓는 방법이 다른 것도 있지만 욕심이 많으면 그런 경우가 생겨요. 쓸데없는 일에 투자를 하다 빚만 덜컹 지게 되거든요. 그런 집을 보면 안타깝죠.”
김영돈의 말이 일리가 있다 싶었다. 정상적으로 농사만 지을 때 그 많은 빚을 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만 따먹으면 되는데 더 많은 것을 바라다 결국 하나도 못 먹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일이나 욕심이 앞서면 화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올해는 어떤 농사를 지을 계획인가요?”
“작년이랑 비슷해요. 땅이 그러니 특별한 작물을 선택하긴 힘들어요. 특용작물을 해보려 해도 판로가 문제가 되니 선뜻 손대기 힘들어요.”
정직한 대답이다. 땅의 성질을 잘 파악하는 것이 농부의 기본이라면 김영돈은 기본적인 삶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농사를 짓는 일은 모험이나 투기에 가깝다.
정선 지역에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도시에서 내려온 이들인데 산술적인 계산만으로 농사를 짓다보니 일이 잘될 리가 없다. 작년 김영돈이 보증을 서서 비료와 농약 등을 가지고 간 한 초보 농사꾼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망했다. 혼자만 망하면 좋으련만 초보 농사꾼은 농사를 여기저기에서 빌린 돈으로만 하다 보니 돈 빌려준 사람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사기꾼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초보 농사꾼은 사람 잃고 돈 잃고 인생마저 잃을 처지가 되었다. 한 번에 큰돈을 벌어보려는 욕심이 농사엔 통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김영돈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힘찬 함성도 그의 이름을 아름답게 하는 요인이다. 시골에서 진보란 이름으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힘겨운가. 그런데도 김영돈은 진보의 삶을 생활처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의 부인 함선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김영돈 부부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고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진보 생활문예『삶이 보이는 창』 창이 만난 사람들 中.
Posted by @이케이

  오랫동안 포스팅을 하지 못했네요ㅠㅠ 이게 다 디카/폰의 사진을 옮기기가 귀찮아서.. 죄송합니닷. 앞으로 성원에 힙입어 아리의 성장과정을 꾸준히 보여드릴것을 노력하겠습니다.ㅠ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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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동물병원에 가게 된 것인데, 어느 날 보니까 아리 배가 축~ 쳐져있는 것을 후배가 발견했습니다. 깜짝놀래서 그 다음날 바로 병원에 데려가서 혈액검사도하고- 의사선생님이 '이러이러한 병이 의심된다' 하셔서 그 병 판별하는 검사도 했습니다.

  아직 아기인데 걱정이 많이 됐어요ㅠㅠ. 다행이도 아무런 이상이 없데요.
그런데 왜 배가 아직도 축~ 늘어져 있는지...
3일치 약을 받고, 계산을 하는데 진료비가.. 두둥! 107000원ㅠㅠ...
자취생인 저희에게는 큰 돈인데요, 아리한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마침 그때 통장잔고가 있었으니 다행이에요~ 결제하고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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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아리 배가 축 쳐져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잘먹고 잘 싸면 괜찮을거라고 했고, 활동력도 좋고 잘먹고 잘싸는데 배가 들어가지가 않네요 아직도 ㅠㅠ; 나중에 큰 병으로 발견될까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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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은 아리가 이런 표정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어찌나 꾸벅꾸벅 졸던지.. 그러다가 누워서 놀다가 그 상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네요ㅋㅋ; 귀여워라~~ 일식집에 가면 볼수있는 팔 흔들거리는 고양이 인형 같습니다.ㅎㅎ
아래에 전신샷.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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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가 노트북을 진짜 좋아해요. 지금도 계속 저를 방해하고있는데요^^; ㅋㅋ
노트북에서 열이 나서 그런것 같습니다. 제가 잠시 노트북 열어두고 화장실이라도 갔다오면~
이상한 창들이 엄청나게 열려있고...=_=) IT시대에 발맞춰 가는 아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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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으로 잠이 들었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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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는 예전에 찍어뒀다가 묵혀놨던^^; 사진들이구요~ (아직까지도 아기같죠ㅋ)
방금 찍은사진 입니다. 훌쩍 자란 티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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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포스팅때나, 두번째 포스팅때 사진과 비교해보면 엄청나게 자란게 보입니다.
계속 아기 모습을 유지하면 좋으련만 ㅠ.ㅠ ㅋㅋㅋ

 아! 그리고 아리의 성장에 발맞춰 ㅋㅋ; 사료를 baby cat을 먹었었는데, 3~4개월 고양이 용으로 바꿨답니다~ㅋ
 그리고 몇일전에는 첫 예방접종도 했어요~~ ^_^)

 우리 아리에게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감사합니다^ㅇ^ㅋ


Posted by @이케이

  벌써 아리와 같이산지 일주일이 되어 가네요~ㅎㅎ 시험기간이라서 다음주까진 계속 아리혼자 집지키는일이 잦을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ㅠㅠ... 아리야 셤끝나고 많이 놀아줄게~^.^)*ㅋㅋ


 아리가 일주일 새에 엄청많이 큰것 같아요-0-) 데려올땐 완전 아가였는데, 요새 허리랑 팔다리가 좀 길어지고, 발톱과 이가 부쩍 날카로워 졌어요~~~~ 이젠 물고 할퀴며 장난칠때 좀 아프더라구요ㅠㅠ; ㅋㅋ





  시선처리까지 해주는 모델 아리 ~ ㅋㅋㅋㅋ


  자꾸 어둡고 좁은 곳을 찾아들어가더라구요~~고양이의 습성때문인가요?ㅎㅎ
자꾸 냉장고 뒤, 화장대 뒤로 숨으려고 해서 ㅠㅠ....
틈이란 틈은 다 막아버렸습니다 ;




 완전 새벽에~ 제 머리카락갖고 장난치고 자꾸 볼 빨고 그러면서 깨워놓고.. 은근슬쩍 와서 팔베게 베고 눕는 아리. ㅋㅋㅋㅋㅋ그 모습이 너무이뻤는데, 한손으로 사진찍기 힘들었어요ㅠ.ㅠ ㅋㅋㅋ

  제 손을 베개 삼아 눕더니 금새 잠들어 버리네요.ㅎㅎㅎ


  아리가 변비에 걸린건 아닌가.. 싶어요 ㅠㅠ처음 데려왔을때 2~3일정도는 꼬박꼬박 배변을 잘 했는데, 점점 대변보는 빈도가 줄고.. 배가 아주 빵빵해서 터질것같은데도 배변은안하면서 계속 또 사료 먹고 또먹고... 하는거있죠..-0-) 변비걸린게 아닐까요?ㅠㅠ 그래서 어제는 인터넷에서 '배변유도'라는 걸 보고 어설프게 따라했더니 쪼~끔 볼일보다가 마네요...; 배는 여전히 빵빵...ㅜ0ㅜ 걱정되는데.. 애묘인 분들~ 자연스러운건지 알려주세요~~*

  
 마지막사진은 오늘의 BEST 샷~~ㅋㅋㅋ 표정이 너무 귀여워요 / 3/


동거 6일째. 아리, 잘 크고있습니다^^~


 아리가 맘에 드셨다면 추천 꾹~ 누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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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케이